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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of Famer15

클라이드 드렉슬러:The Glide 하킴 올라주원을 만나다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고향은 뉴올리언스지만 성장기를 휴스턴의 사우스 파크 지역에서 보낸 사실상 휴스턴 토박이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후 2학년에 농구부에서 탈락하기도 했었으나 3학년 때 크리스마스 경기에서 샤프트 타운 고등학교를 상대로 34 득점, 27 리바운드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하며 대학 감독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휴스턴 인근의 텍사스 공과대학교, 뉴멕시코 주립대학교, 휴스턴 대학교에서 입단 제안이 왔는데 그는 가이 루이스 감독에 의해 고향 친구였던 마이클 영이라는 선수와 함께 휴스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1년 후 나이지리아 출신의 하킴 올라주원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며 먼 훗날 NBA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 콤비의 전설이 시작되게 된다. 올라주원은 아.. 2022. 2. 10.
크리스 웨버:부상으로 늦어진 전성기 미스터 타임아웃 크리스 웨버는 9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학교를 주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미시간 주의 Mr. Basketball에 선정되기도 한 미래가 밝은 소년이었다. 졸업 후 미시간 대학교로 진학하여 1학년에 바로 주전으로 뛰었으며 입단 동기인 주완 하워드, 제일런 로즈, 지미 킹, 레이 잭슨과 함께 NCAA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들을 Fab5라고 칭했고 특히 이들 중 웨버는 큰 키에 빠른 스피드 넓은 시야, 긴 슛 레인지를 가진 선수였고 외모까지도 뛰어났기 때문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학년 때 NCAA 파이널까지 진출하며 준우승을 이뤄냈고 2학년 때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NCAA 토너먼트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기 막판 지고 있는 상황.. 2022. 2. 1.
존 스탁턴:The Point Guard 저평가받은 유망주 존 스탁턴은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곤자가 대학 시절 야투율 57%를 기록할 정도로 정확한 슛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고 그 외의 다양한 장점이 있었지만 그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환상적인 어시스트와 게임 리딩일 것이다. 스카우터 들은 당시의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1984년 올림픽 대표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었는데 최종 탈락하긴 했지만 이것을 계기로 관계자들은 그의 재능을 알게 된다. 1984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1라운드 16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되게 되는데 이 드래프트에서는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등이 참가했던 드래프트였고 상대적으로 그의 존재감은 적은 편이었다. 후에 스탁턴이 NBA에 남기게 된 기록들을 생각하면 너무 초라한 순위였지만 유타.. 2022. 1. 29.
레지 밀러:왕은 자신의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3점 슛으로 스타가 되다 레지 밀러는 신장 201cm에 체중이 90kg이 나가지 않은 NBA에서 흔하지 않은 몸을 가진 선수였다. 이 선수를 1987년 트래프트에서 인디애나가 지명하자 팬들은 심한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레지 밀러는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까지 오른 레전드가 된다. 이렇게 마른 레지 밀러가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3점 슛이다. NBA에는 1979-80 시즌에 처음으로 3점 슛이 도입되는데 초창기에는 너무 생소한 룰이었고 기존 방식에 익숙한 선수들은 골대 가까이에서 확률 높은 슛을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은 스테판 커리가 한 시즌 400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3점 슛은 공격에서 중요한 옵션이 아니었다. 레지 밀러는 이런 시대에 매년 300.. 2022. 1. 22.
토니 쿠코치:유럽 최고의 선수 시카고에 오다 유럽 최고의 선수, 토니 쿠코치 토니 쿠코치는 208cm의 키에 뛰어난 슈팅과 볼 핸들링 패싱 등 공격력에 있어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유로리그와 NBA에서 활약했던 선수이다. 1985년 유고슬라비아 리그의 유고플라스티카 스필트에 입단해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87년 유고슬라비아 농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세계 주니어 선수권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 시절부터 토니 쿠코치는 유로리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88년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고 서울 올림픽에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로 출전해서 은메달을 따기도 한다. 89년에는 유로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유로 바스켓 우승을 이뤄내며 크로아티아 올해의 스포츠맨에 선정되기도 한다. 1990년에는 유로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MVP도 수상하게 된다. .. 2022. 1. 21.
아비다스 사보니스: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다 아비다스 사보니스 금메달을 목에 걸다 아보니스 사보니스는 소련의 리투아니아 공화국 출신의 농구선수이다. 1964년에 출생하여 13세부터 농구를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기량을 뽐내며 15세부터 소련 유소년 대표팀으로 경기에 나서게 된다. 17세가 되던 1981년 고향팀이자 소련 내 강팀인 BC.질기리스에 입단하여 꾸준히 성장하였으며 사보니스는 9년간 뛰며 유럽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그가 소련이 아닌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는데 이 대회에 소련팀으로 참가하여 준결승에서 데이비드 로빈슨, 데니 매닝, 미치 리치몬드가 뛰는 미국 대표팀을 꺾어버렸다. 결승에서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마저 이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당시 유고슬라비아에는 드라젠 .. 2022. 1. 21.
디켐베 무톰보:Mt. Mutombo 의사를 꿈꾸던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는 자이르(콩고 민주공화국)에서 10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교장이었다고 하며 무톰보의 학창 시절 성적은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원래 의사였고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형이 무톰보와 아버지와 논의 끝에 축구가 아닌 농구를 선택했다고 한다. 피나는 연습으로 실력을 키우던 그는 20세에 형과 함께 자이르의 청소년 국가 대표팀에 뽑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활약을 본 미국 대사관 직원이 디켐베 무톰보의 시합 영상을 조지타운 대학교의 존 톰슨 주니어 감독에게 보냈고 감독은 바로 무톰보를 조지타운에 입학시키게 된다. 하지만 당시 무톰보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NCAA에서는 기준 학력에 못 미치는 학생은.. 2022. 1. 20.
미치 리치몬드:The Rock/Run TMC The Rock 미치 리치몬드는 1988년부터 2002년까지 NBA에서 활약했던 슈팅가드로 뛰어난 득점력을 지닌 내 외곽 상관없이 공격이 가능한 선수였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강력한 위력을 뽐내던 선수였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마이클 조던도 그의 슈팅력이 본인보다 낫다고 인정했던 선수였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리그를 대표하던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에 조금 가려져 인지도면에서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당시 레지 밀러, 글렌 라이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슈터로 꼽히기도 했다. 위협적인 슈터인 동시에 굉장히 다부진 몸을 가진 선수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NBA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몸 자체가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로 다부진 체격을 가진 선수였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서.. 2022. 1. 20.
벤 월러스:최고의 수비수 BIG BEN 미지명 선수 벤 월러스는 대학시절 NCAA 디비전2에서 MVP를 수상하며 활약했지만 포지션에 비해 너무 작은 2부 대학리그 출신 선수에게 관심을 갖는 구단은 없었다. 월러스는 프로필상 206cm로 되어있지만 실제 키는 203cm정도였다. 이것도 신발을 신고 잰 신장이어서 NBA에서는 도저히 빅맨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러스는 NBA 진출이 좌절되고 이탈리아 리그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워싱턴 불리츠의 단장 웨스 언셀드가 그를 눈여겨보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당시 워싱턴에는 올스타급 포워드였던 크리스 웨버와 주완 하워드가 버티고 있어서 월러스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이후 조금씩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활약하지만 3:1 트레이드로 올랜도 매직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벤 월러스는 조금씩 두각..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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