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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래리 브라운의 신의 한수

by 이니웍스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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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아이버슨의 등장

아이버슨은 199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지명되었다. 이 드래프트에는 NBA 역사에서도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드래프트였는데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시. 레이 앨런, 스테판 마버리, 저메인 오닐, 앤트완 워커 등 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아이버슨이 1번으로 지명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아이버슨은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팬들은 그의 화려한 플레이에 큰 성원을 보내주었다.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에서 그를 크로스오버로 속이고 점프슛을 성공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5경기 연속 40 득점을 올리기도 했는데 마이클 조던은 당시 "나도 아이버슨 나이 때는 저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이버슨을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당시 저조한 성적으로 아이버슨이 아무리 활약을 해봐야 경기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팀이었다. 제리 스택하우스와 함께 공격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했었지만 서로 공 소유 시간이 길고 공을 들고 플레이를 하는 타입의 선수였기에 서로 궁합이 좋지 못했다. 그 시즌 22승밖에 기록하지 못하였고 데뷔 초와는 달리 아이버슨을 이기적인 선수라는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버슨이 넘치는 자신감으로 성공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타입의 선수기도 했지만 인터뷰 등에서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이 없는 무례한 언행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래리 브라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감독으로 부임하다

아이버슨이 형편없는 팀 성적을 낸 데뷔 시즌을 마치고 1997-98 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새로운 감독이 취임하게 된다. 그는 래리 브라운 감독으로 코치 경력 20년의 명장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강팀으로 만든 경력이 있는 지장이었다. 래리 브라운의 스타일은 강력한 디펜스 중심의 팀을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필라델피아에 부임하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이버슨이 공격에서는 폭발력 있는 플레이를 하며 엄청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선수였지만 신체조건 때문에 수비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고 그의 스타일상 전술적인 부분에서 활용하는데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성향과 감독의 전술이 충돌하는 부분이 나온 것이다. 래리 브라운은 고심을 거듭하다 아이버슨을 슈팅가드로 활용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아이버슨은 당시 포인트가드를 봤었는데 공격에서는 슈팅가드 역할을 하고 수비에서는 상대 포인트 가드를 상대하는 식으로 그를 활용한 것이다. 이를 위해 팀에 수비가 뛰어난 장신의 포인트 가드를 두는 방식을 사용했고 에릭 스노우와 애런 맥키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수비에서 아이버슨이 버거워하는 공격수를 대신 막아섰고 공격에서는 상대 포인트가드보다 앞서는 피지컬로 포스트업을 활용하거나 아이버슨이나 외곽에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로 아이버슨을 지원했다. 그리고 인사이드에도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수비가 뛰어난 빅맨들을 기용하며 1개의 창과 4개의 방패라는 독특한 팀을 만들어갔다. 팀은 점점 안정적인 승률을 되찾았고 98-99 시즌에는 8년 만에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게 된다.

 

 

레이커스와의 대결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강력한 수비수들을 보강하며 점점 상승세를 탔고 마침내 00-01 시즌 NBA 파이널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때 상대는 파이널까지 단 한경기도 패하지 않고 올라온 코비와 오닐의 레이커스였고 필라델피아는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과 결승 모두 7차전까지 치르고 진출했고 주전 선수들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뛰었기에 쉽지 않은 시리즈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1차전을 필라델피아가 가져오게 된다. 1 쿼터 후반부터 필라델피아가 실책을 연발하는 레이커스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2 쿼터부터 아이버슨의 공격력이 불을 뿜었다. 전반에만 30점을 기록한 아이버슨의 활약으로 리드를 잡았고 이후 동점을 허용하며 연장까지 갔지만 아이버슨의 연속 7 득점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때 아이버슨과 타이론 루의 대결에서 나온 크로스오버 드리블은 아직까지도 앵클 브레이커 관련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차전부터는 1차전에 부진했던 코비 브라이언트를 봉쇄하는데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파이널의 승부사인 데릭 피셔와 로버트 오리의 3점 슛이 터졌고 샤킬 오닐은 필라델피아의 인사이드를 유린했다. 이는 5차전까지 이어졌다. 필라델피아는 매 경기 최선을 다했지만 인사이드에서 디켐베 무톰보가 처절할 정도로 샤킬 오닐을 잡고 늘어졌지만 그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고 시리즈 후 무톰보는 한동안 입원해야 했다고 한다. 아이버슨이 1차전 48 득점, 2차전 23 득점, 3차전 35 득점, 4차전 다시 35 득점, 5차전 37 득점을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홀로 공격을 이끄는 필라델피아가 레이커스의 원투펀치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아쉽게도 필라델피아는 1승 4패로 시리즈를 마감하며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03년 이후 래리 브라운도 사임하며 아이버슨과의 인연도 끝나게 된다. 하지만 래리 브라운은 다음에 맡게 되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필라델피아처럼 강력한 수비력을 가진 팀을 다시 꾸렸고 2004년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2001년이 NBA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가진 슈퍼스타의 마지막 NBA 파이널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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