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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존슨:피닉스의 전설 새크라멘토 시장되다

by 이니웍스 2022. 1. 23.

90년대 최고의 공격형 포인트가드 케빈 존슨

케빈 존슨은 1990년대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팀 하더웨이와 더불어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다. 통산 9.1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동료를 살려줄 줄 알았던 그였지만 팬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하킴 올라주원에게 In your face덩크를 성공시킬 정도의 운동신경을 가진 폭발력 있는 공격형 가드의 이미지였다.

그는 UC 바클리를 졸업 후 87년에 1라운드 7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당시 팬들은 팀에 마크 프라이스라는 좋은 가드가 있었기에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지명하기를 원했지만 구단에서는 그를 지명했고 팬들은 야유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래프트 1년 전 케빈 존슨은 오크랜드 어슬레틱스에 유격수로 지명될 정도로 농구 외의 스포츠에서도 대단한 기량을 보유했던 선수였다. 이때 야구를 포기하고 농구를 선택한 그가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NBA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팀에 같은 포지션인 좋은 선수가 있는 팀에 지명이 되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팬들의 우려한 대로 케빈 존슨은 좋은 선수였지만 마크 프라이스에게 밀려 많은 출전시간을 얻을 수 없었고 결국 시즌 중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된다. 

그런데 이 트레이드가 그의 NBA 커리어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트레이드 된 후 다음 시즌 2년 차 징크스 따위는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시즌 평균 20.4 득점 12.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전까지 NBA 역사상 단 세 명만이 보유한 기록이었던 20 득점 10 어시스트의 시즌 기록을 보유한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그는 시즌 후 기량 발전 상을 수상하였고 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으며 MVP 투표에서도 8위에 올르는 등 자신의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인 89-90 시즌과 90-91 시즌에도 20 득점 10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오스카 로버트슨과 아이제아 토마스와 함께 세 시즌 연속 20-10을 기록한 선수라는 기록을 만들어낸다. 이런 그의 성장과 함께 피닉스의 성적도 수직상승하게 되고 플레이오프는 꿈도 못 꾸던 팀이 2년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뚫을 때까지 공격하다

당시 케빈 존슨의 주무기는 돌파였다. NBA 역사상 최고 수준의 돌파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현란한 드리블과 엄청난 스피드를 가진 선수였다. 골밑에 어떤 선수가 막고 있어도 파고 들어갔으며 부딪치고 넘어져도 다시 돌파를 해 들어가는 공격 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운동능력이 엄청났었기 때문에 상대 센터들을 상대로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일도 많았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이 위에서 언급했던 하킴 올라주원에게 정면으로 꽂았던 덩크슛이었다.

존슨은 3점 슛에는 큰 재능은 없었고 주로 돌파를 이용한 공격을 했지만 그 당시 거칠었던 수비를 벗겨내고 꾸준히 20득점씩 올릴 수 있는 놀라운 선수였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의 신장이 185cm에 불과했다는 점이기도 했다.

훗날 아이버슨을 보며 전성기의 그를 떠올리기도 했었다. 

 

바클리와 함께 파이널로

1992-93 시즌을 앞두고 피닉스는 필라델피아의 찰스 바클리를 3:1 트레이드로 영입하게 된다. 바클리의 명성은 대단했지만 팀의 주축 3명과 트레이드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슈가 되었지만 이 트레이드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팀은 역대 최다승인 62승 20패를 기록하고 정규시즌 우승팀이 되었으며 바클리는 이 해 MVP로 선정된다. 하지만 이 시기 존슨은 부상으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경기를 결장하고 있었고 이 부상은 커리어 내내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하지만 팀의 중심이 자신에서 바클리에게로 넘어가고 본인의 결장에도 팀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직 파이널에 올라 챔피언에 오르는 것만을 생각하며 극복해내고 있었다.

피닉스는 플레이오프에서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그리고 시애틀 슈퍼소닉스마저 꺾으며 파이널에 진출하고 쓰리핏을 노리는 시카고 불스와 상대하게 된다. 시카고와 피닉스는 매경기 혈전을 펼쳤고 6차전에서 결국 시카고에게 패배했지만 6차전은 1점 차이로 패배할 정도로 시카고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6차전 패배 후 존슨에게 팬들은 야유를 보냈고 모든 비난의 화살이 그에게 향했다. 이유는 6차전 마지막에 존슨이 역전 시킬 수 있는 찬스를 호레이스 그랜트의 블록 당한 것도 있지만 파이널에서 부진했던 모습 때문이었다. 

아쉬웠던 전년도의 모습을 뒤로하고 피닉스는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케빈 존슨도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팀은 더이상 파이널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1998년 은퇴를 선언한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은퇴 이후의 삶인데 그는 2008년 민주당 소속으로 새크라멘토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2016년까지 새크라멘토의 시장직을 역임한다. 새크라멘토 역사상 최초의 흑인 시장이라고 한다. 그는 선수로는 은퇴했지만 은퇴 후에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돌파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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