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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프 압둘라힘:'96 드래프트의 숨겨진 스타

by 이니웍스 2022. 1. 30.

전미 최고의 고교 선수

샤리프 압둘라힘은 이름으로 인해 오해받곤 하지만 미국인이며 부모가 모두 무슬림이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2년 연속으로 Mr. Basketball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고 팀을 주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였다. 졸업 후 UC버클리에 진학하였으며 1학년 때 평균 21.1 득점 8.4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학년 선수 최초로 Conference Player of The Year를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 바로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때가 1996년으로 NBA 역사상 가장 스타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던 그 해였다.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선수들만 나열해도 올스타팀이 구성될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쏟아졌는데 앨런 아이버슨, 스테판 마버리, 코비 브라이언트, 레이 앨런, 스티브 내쉬, 저메인 오닐 등이 96년에 모두 드래프트에 참가했었다. 샬리프 압둘라힘은 이 엄청난 선수 가운데에서 3번으로 지명받았으며 밴쿠버 그리즐리에 입단하게 된다.

 

약팀의 에이스

밴쿠버는 창단된 지 1년이 된 팀이었고 팀에는 쓸만한 선수가 없는 팀이었다. 샤리프 압둘라힘은 이 팀에서 1년 차부터 에이스 역할을 하며 평균 18.7 득점을 기록하며 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된다. 기록만으로 보면 아이버슨이나 마버리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버슨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신인왕 수상은 실패한다. 루키 시즌 이후에도 꾸준히 20 득점 이상씩을 기록하며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게 되고 금메달도 목에 걸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만 팀 성적은 여전히 바닥이었고 98년 드래프트에서 마이크 비비를 지명되어 조금 나아지나 했지만 팀 성적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밴쿠버의 경우 팀 성적에 연고지가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경우였는데 우선 밴쿠버는 캐나다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NBA에서는 캐나다에 팀을 창단해 NBA의 인기를 확장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밴쿠버에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계속 된 적자로 구단주가 계속 바뀌는 상황이 지속되고 FA영입도 여의치 않았으며 팀은 역사상 최단경기 최다패 기록을 매 경기마다 갱신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압둘라힘은 꾸준히 제 역할을 해줬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메릴랜드 대학 출신의 포인트가드였던 스티브 프렌시스를 지명하며 분위기 전환을 노렸지만 스티브 프렌시스가 벤쿠버에서 뛰는 것을 거부하여 3개 팀의 11명이 얽힌 대형 트레이드가 벌어지게 된다. 이때 프렌시스를 휴스턴으로 보내며 휴스턴의 젊은 슈팅가드였던 마이클 디커슨이 영입되게 된다. 디커슨은 그리즐리스에서 99-00 시즌 18.2 득점 3.4 리바운드 1.4 스틸을 기록하며 압둘라힘을 공. 수에서 지원해 주게 된다. 2001년까지 압둘라힘과 마이크 비비, 마이클 디커슨은 함께 활약하지만 팀의 성적이나 인기는 여전했고 2001년 밴쿠버는 멤피스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고 압둘라힘은 이해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에 지명된 파우 가솔과 트레이드 되며 애틀랜타로 이적하게 된다. 

 

꾸준하지만 발전하지 못한 샤리프 압둘라힘

애틀랜타 호크스에서도 압둘라힘은 여전히 20 득점 이상을 올려주는 선수였고 2002년에는 올스타에도 선정되지만 애틀랜타도 무톰보가 떠난 후 리빌딩하는 팀이었고 3년간 활약하지만 압둘라힘도 개인 기량만 출중한 팀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키지 못하는 스타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된다.

포틀랜드 시절부터는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하락하게 되고 한 시즌을 마친 후 FA 자격으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새크라멘토는 밀레니엄 킹스라 불리던 시절 선수들이 다 떠난 상태였고 압둘라힘은 밴쿠버 시절 동료였던 마이크 비비와 다시 한 팀에서 뛰게 된다. 이때 압둘라힘은 식스맨으로 뛰었지만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큰 활약은 없었고 압둘라힘은 2008년 은퇴하게 된다.

 

샤리프 압둘라힘은 파워포워드급의 신장과(206cm) 스몰포워드급의 테크닉을 가진 선수였다. 그는 포스트업 스킬이 좋고 리바운드 능력이 뛰어난 선수였으며 풋워크와 슈팅 레인지가 길었기 때문에 딱히 뭐 하나 떨어지는 부분이 없는 수준급 득점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파워포워드를 수비하기에는 파워가 부족했고 스몰포워드를 수비하기에는 발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꾸준히 20 득점을 기록하는 실력은 있었지만 이미 완성된 기량으로 NBA에 입성한 후 큰 발전이 없었다는 부분이 문제였다. 그의 루키 시절과 드림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던 시절을 비교해보면 기량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약팀에서 뛰어야 했던 선수였기에 96년 드래프트 된 선수들 중에 가장 주목을 못 받은 운이 나쁜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퇴 후 새크라멘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하기도 하고 G리그의 GM을 맡기도 하다가 2019년부터 NBA G리그의 회장직에 올라 안정적인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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