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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렐 스프리웰:감독의 목을 조른 문제아

by 이니웍스 2022. 2. 14.

팀원들과의 불화

라트렐 스프리웰은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았는데 , 이사를 자주 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농구를 배우지는 못하고 길거리 농구만 하다가 아버지가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며 밀워키의 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부 대학리그에서 뛰다가 3학년에 앨라배마 대학교로 편입하여 로버트 오리와 함께 뛰었고, 4학년 때 스프리웰 특유의 폭발력 있는 득점력을 보여주며 스카우터들에게 주목받게 된다.

1라운드 24순위로 골든스테이트에 지명된 스프리웰은 루키 시즌 기존 주전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지며 주전 슈팅가드 자리를 차지했고 15.4 득점, 3.8 어시스트, 3.5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 NBA 루키 세컨드 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2년 차부터는 전경기에 출전하며 형균 43분을 뛰었고 평균 21 득점을 올리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한다.

스프리웰은 올스타와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고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팬들에게 주목받는 선수가 되어갔지만  팀 내부에서는 팀원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며 팀케미스트리를 해치는 선수로 인식되고 있었다. 본인과 친분이 있던 크리스 웨버나 크리스 멀린의 트레이드에 대해 구단,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고 팀의 핵심 멤버였던 팀 하더웨이와 굉장히 사이가 나빴다. 이 둘은 서로 평균 20 득점씩 기록했지만 서로를 싫어해서 게임 중에 패스를 하지 않아 팀 플레이를 망쳤고 이에 대한 비난에 합동 인터뷰로 우리는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없으나 팀 동료로서 코트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호흡을 맞추겠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크게 말다툼을 벌이자 구단에서 팀 하더웨이를 트레이드하게 된다.

구단에서 스프리웰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해줬지만 팀의 성적이 나아지지 않자 스프리웰이 그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후 1997-98 시즌 PJ 칼리시모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감독을 폭행한 라트렐 스프리웰

워리어스는 선수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라트렐 스프리웰을 트레이드하려다 실패해서 마지못해 그를 데리고 가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스프리웰이 칼리시모 감독과 계속해서 대립했고 칼리시모 감독은 이에 대한 일종의 징계로 그를 식스맨으로 기용하게 된다. 이 조치에 대해 스프리웰의 불만은 폭발하게 되고 1997년 12월 사건이 일어난다.

스프리웰은 감독을 찾아가 그의 목을 조르며 난동을 부렸는데 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목을 잡고 감독을 질질 끌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다시 감독을 찾아가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구단 사무실에 쳐들어가 트레이드 요청을 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스프리웰은 전 경기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받아 컨버스와의 계약금과 잔여 연봉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후 선수 노조의 변호로 전 경기 출장정지가 68경기로 완화되긴 하지만 폭력적이고 팀 분위기를 망치는 선수로 낙인찍히게 된다.

 

닉스의 트윈 테러

다음 시즌 뉴욕에서 트레이드 요청이 들어온다. 트레이드 조건은 존 스탁스, 크리스 밀스, 테리 커밍스를 받고 라트렐 스프리웰을 보내는 것, 워리어스는 트레이드에 동의하였고 스프리웰은 뉴욕 닉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공백기와 부상 여파로 37경기 중 4 경기만 선발 출장하였고 주로 식스맨으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닉스를 앨런 휴스턴, 패트릭 유잉과 함께 이끌며 NBA 파이널까지 진출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비록 결승에서는 주전 멤버들이 거의 다 부상으로 제 역할을 못하며 준우승을 차지하지만 스프리웰은 앨런 휴스턴과 샌안토니오의 수비진을 흔들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팬들은 앨런 휴스턴과 스프리웰을 트윈 테러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9.11 테러가 일어난 뒤로 샌안토니오의 트윈 타워나 닉스의 트윈 테러라는 별명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 시즌 후 스프리웰은 휴스턴과 함께 유잉 대신 뉴욕을 이끌게 되었고 팀은 이 둘을 앞세워 스피디하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팀 컬러를 바꾸고 있었다. 스프리웰은 자선단체에 기부도 하고 여러 가지 광고계약도 따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코트 밖에서 여전히 사소한 말썽을 계속 일으켰고 팀 입장에서도 실력 자체는 인정하지만 고액 연봉자인 그가 계속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주자 결국 그를 미네소타로 트레이드한다.

 

미네소타 그리고 태업

미네소타에 간 그는 가넷, 카셀과 함께 좋은 활약을 보이며 처음으로 팀을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이후 카셀과 스프리웰은 연봉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겪으며 태업을 일삼으며 팀 분위기를 망쳐놓았고 두 시즌만에 미네소타와의 인연은 끝나고 만다. 당시 미네소타가 스프리웰이 만족할만한 금액을 줄만한 자금력이 없기도 했지만 라트렐 스프리웰의 기량이 하락세였는데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이유가 없었다. 미네소타 입장에서는 30대 중반쯤 된 그에게 3년 2100만 달러를 제안한 것도 굉장히 후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2005년 리그를 떠났다.

 

 

장점을 뛰어넘는 큰 단점

라트렐 스프리웰은 순간적인 돌파가 장기인 선수였다. 돌파에서는 NBA 선수 중에서도 수준급으로 꼽혔으며 슈팅도 기복은 있지만 한번 터지면 무서울 정도의 폭발력이 있었다. 하지만 슛이 안 터지는 날에도 어시스트나 리바운드 참여는 제쳐두고 공격만 고집하는 선수였다. 그럼에도 14년간 평균 18.3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득점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그를 문제를 일으키며 팀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팀의 주축 선수로 기용을 했다.

하지만 팀 동료와 싸움을 하고 싸움 후 연습장에 각목을 들고 오거나, 총을 들고 오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고 감독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징계기간에 난폭운전으로 사고를 내 가택 연금당하기도 했던 문제아였다. 이렇게 장점을 뛰어넘는 큰 단점이 있었기에 그는 늘 소속팀과의 마지막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고 팀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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