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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오든:부상으로 쓰러진 비운의 유망주

by 이니웍스 2022. 2. 7.

이상적인 신체조건

그렉 오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인디애나의 로렌스 노스 고등학교에서 팀을 3년 연속 인디애나주 챔피언으로 만들며 게토레이 선정 청소년 농수선수에 선정되었으며 2006년 인디애나주 Mr.Basketball, 맥도널드 올 아메리칸에도 선정되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2의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로빈슨과는 다르지만 그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는 달라진 규정으로 19세 미만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가 불가능했기에 팀 메이트였던 마이클 콘리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시절에는 손목이 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이끌었고 결국 패배했지만 상대팀인 플로리다 대학교의 조아킴 노아와 알 호포드를 상대로 25 득점, 12 리바운드를 기록한다.
이런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술적으로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워낙 이상적인 신체조건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213cm의 신장에 129kg의 체중에 운동능력 또한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득점을 제외하고라도 대단한 리바운더이자 슛블록커였고 성실하기까지 한 올드스쿨 타입의 빅맨이었다. 오든은 1학년을 마치고 바로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되는데 입단 동기인 케빈 듀란트도 이해에 드래프트에 참여한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듀란트가 1순위를 받아야 할 것 같지만 리그에는 정통센터가 점점 귀해지기도 하였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았었기에 대부분의 팀에서 당연히 1순위는 그렉 오든의 차지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드래프트 당시에는 패트릭 유잉과 비교되기도 했는데 이런 큰 기대를 받고 NBA에 들어온 오든의 이후 행보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포틀랜드의 선택

모두의 예상대로 그렉 오든은 2007년 드래프트 1번으로 호명되었고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로 지명된다. 포틀랜드는 리빌딩중이었는데 2006년 드래프트 출신의 브랜든 로이와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올 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될 정도의 유망주였으며 브랜든 로이는 신인왕을 수상하기도 한 선수였다. 전년도 드래프트의 성공 이후 다시 팀의 인사이드를 책임질 정통파 센터까지 얻게 된 포틀랜드는 케빈 듀란트를 선택해야 했다는 일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매우 만족스러워했으며 영건 3인방을 중심으로 한 밝은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포틀랜드 구단과 팬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리그를 대표할 수 있을만한 3명의 환상적인 모습을 꿈꾸고 있을 무렵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그렉 오든 신체검사에서 오른쪽 무릎에 마이크로 프랙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던 것이다. 이 수술은 재활 기간이 길기 때문에 오든은 루키 시즌 아무런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체 수술과 재활에 전념하게 된다. 오든이 부상으로 쉬는 동안 동기인 케빈 듀란트는 평균 20 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에 등극하게 된다. 그러나 듀란트의 저런 활약에도 시애틀은 형편없는 시즌을 치른 반면 포틀랜드는 오든 없이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다. 로이와 알드리지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다른 선수들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구단과 팬들은 지금 라인업에 제 컨디션의 오든이 합류하면 어느 정도의 팀으로 변모할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오든이 레이커스와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경기 13분만에 부상으로 2주간 빠지게 된다. 다행인 것은 부상 부위가 무릎이 아니라 발목이었다는 점이었고 복귀 후 2009년 밀워키 전에서 24 득점, 15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본인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2월에 다시 무릎 부상으로 3주간 쉬게 된다. 이때부터 슬슬 구단과 팬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분명히 좋은 재목이었던 그가 잦은 부상으로 혹시 제2의 샘 보위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렉 오든의 계속되는 부상

그렉 오든은 신인 시절 부상으로 61경기에만 출장했고 평균 21분만을 소화하며 8.9 득점, 7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그래도 출전했을 때의 인사이드에서 무게감을 실어주었기에 부상관리와 리그에 적응만 되면 괜찮은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2년 차 시즌 주전센터로 기용되어 한 경기 24 득점, 12 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하고, 한 경기 20 리바운드라는 기록을 세우며 발전되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해 12월 21 경기만에 슬개골 골절로 실려나가며 남은 시즌을 날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팬들의 우려가 현실로 바뀌게 된다. 10-11 시즌 왼쪽 무릎 마이크로 프랙쳐 수술을 해야 했고 2012년에 왼쪽 무릎에 다시 이상이 발견되며 같은 수술을 다시 받게 된다. 역대급 센터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유망주가 유리몸이 되어 초라하게 사라지게 된 것이다.
드래프트 이전부터 그의 선천적으로 길이가 다른 양쪽 다리 때문에 부상의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양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달라 자세에 문제가 생겨 허리와 척추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고 한자. 그럼에도 그의 재능을 믿고 듀란트를 포기하고 그렉 오든을 선택한 포틀랜드는 5년 만에 그를 방출하게 된다.
포틀랜드에서 5시즌을 있으면서 소화한 경기는 단 82경기뿐이니 당 한 시즌만 뛴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후 2013년 마이애미와 2년 미니멈 딜로 계약하여 4년만에 코트로 돌아와 프리시즌 경기를 치루지만 시즌 개막 전 다시 한번 양쪽 무릎 부상을 당한다. 시즌 후 FA가 되었지만 그를 찾는 팀은 없었고 중국의 CBA 장쑤 드래곤스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는 계속되는 부상으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NBA에서 사라져 버린 선수로 1라운드 1번 픽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좋지 못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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