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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힐:전성기를 앗아간 발목부상

by 이니웍스 2022. 1. 24.

아버지에게 재능을 물려받다

그랜트 힐의 아버지는 예일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으며 미식축구 선수기도 했다. 그는 12년 동안 러닝백으로 활약했고 신인왕과 4번의 올스타, 한 번의 우승을 경험했을 정도의 좋은 커리어를 가진 순수였다고 한다. 그랜트 힐은 이런 아버지의 피지컬과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대학시절 대단한 활약을 하며 듀크대학교를 2년 연속으로 NCAA 정상에 올려놓게 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듀크대학교에서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그의 대학시절 엄청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퍼듀의 글렌 로빈슨에게 1순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결국 최후에 승리한 것은 그랜트 힐이었다. 힐은 물론 공동수상이긴 했지만 루키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이슨 키드와 함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1위한 루키

1994년 드래프트에서 그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받게 되는데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배드 보이즈라고 불리던 라인업이 해체되고 내리막을 타던 팀이었다. 팀에 남아있던 것은 당시의 주축 멤버는 조 듀마스뿐이었지만 듀마스는 힐에게 지지를 보내고 그를 뒷받침해주며 그를 리더로 만들어주었다. 당시 힐의 인기는 리그 전체에서 최고였고 1994-95 시즌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올랜도의 샤킬 오닐을 밀어내고 1위를 기록함 신인임에도 올스타전에 선발로 출전하게 된다.

이때 마이클 조던은 1차 은퇴를 선언한 후였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조던의 뒤를 이을 스타에 목말라 있었고 앤퍼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은 언론의 입맛에 맞는 화려한 플레이와 스타성으로 단숨에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힐은 루키 시즌 평균 19.9 득점과 6.4 리바운드 5.0 어시스트 1.8 스틸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고 제이슨 키드와 함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다.

2년 차이던 다음 해에는 조던이 리그에 복귀를 선언해 NBA 시장이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이했고 조던의 인기는 여전히 최고였지만 그랜트 힐은 이 해 올스타전 팬투표에서 조던을 제치며 1위를 하며 자신의 인기를 증명했다. 이 시즌 힐은 한 단계 더 발전한 활약을 선보였고 평균 20.2 득점 9.8 리바운드 6.9 어시스트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팀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킨다.  지금은 러셀 웨스트브룩이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그랜트 힐은 그런 스탯 관리와는 별개로 이타적이고 적극적으로 팀을 위해 희생할 중 아는 선수였다. 그리고 드림팀3에 선발되어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96-97 시즌부터는 리더십 면에서도 성장하였고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72승을 기록한 시카고 불스에 이어 동부지구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이 시즌 힐은 평균 21.4 득점 9 리바운드 7.3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래리 버드 이후 최초로 20 득점 9 리바운드 7 어시스트 이상을 해낸 선수로 기록된다. 이 시기에 피펜을 제치고 All NBA 퍼스트팀에 뽑히기도 하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이 비례하지 않는 커리어가 시작된다.

 

부상과 복귀를 반복한 그랜트 힐

그랜트 힐은 99-00 시즌부터 공격에 조금 더 치중하겠다고 선언하고 평균 득점을 25.8점까지 끌어올리며 다시 팀을 플레이오프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시즌 막판 발목 부상을 당했는데 제대로 회복할 시간도 갖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출장을 감행한다. 당연히 몸은 정상이 아니었고 결국 시즌 아웃 판정을 받게 된다.

이후 올랜도로 이적하게되는데 팬들은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힐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했지만 지난 시즌 부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올랜도에서 6년간 200경기밖에 뛰지 못한다. 비슷한 시기 앤퍼니 하더웨이도 부상에 시달렸는데 포스트 조던으로 기대받던 두 스타가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부터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 등이 더 주목받게 된다.

한참을 부상에 신음하던 그는 2004-05 시즌 힘겹게 부활하게 되는데 평균 19.9 득점을 기록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자 팬들은 전성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가 코트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성원을 보내며 올스타전에도 출장하게 된다. 이후 06-07 시즌을 마치고 피닉스로 이적하게 되고 런앤건을 추구하던 팀컬러와 발목이 성치 않은 힐의 조합이 괜찮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힐은 좋은 모습을 보였고 08-09 시즌에는 전경기 출장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피닉스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2차전에 진출해보기도 했다. 선즈에서 2012년까지 활약한 후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서 한시즌을 더 소화하고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그랜트 힐은 NBA 역사에서 손꼽히는 화려하고 다재다능한 선수였고 마이클 조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퍼스트 스탭을 가졌다고 평가받던 선수였다. 뛰어난 돌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어시스트 기록이 말해주듯 팀 동료들을 활용할 줄 아는 선수였다. 외곽슛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보니 공격 옵션이 다양하지는 못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슛거리를 늘려가는 노력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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