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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보그스:신체적 약점을 극복하다

by 이니웍스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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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을 받던 타이론 보그스

타이론 보그스는 역대 NBA 선수 중 가장 작은 신장을 가진 선수였다. 160cm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보그스는 8살부터 농구를 시작했는데 모두 작지만 재치 있는 플레이에 보여주는 그가 스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먹시는 아버지가 교도소에 끌려가게 되자 가족을 위해 던바 고등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농구를 배우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결승전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보그스를 던바 고등학교의 스타라고 소개하자 보그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보고 비웃었는데 보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에서 상대 에이스를 9 득점으로 묶고 그의 공을 7번이나 스틸하며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상대팀과 그를 비웃은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결국 보그스의 활약으로 던바 고등학교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처럼 보그스가 상대 선수를 악착같이 달라붙어 수비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먹시(muggsy)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이 별명은 목을 조른다는 뜻의 'mug'에서 따서 붙인 말이라고 한다.

 

이후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에 입학하였는데 1학년 때 슬럼프로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학점 취득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퇴까지 고려했다. 하지만 고생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기 싫어 남은 3년간 농구에 매진하게 된다. 그 결과 3년 평균 14.8 득점, 9.5 어시스트, 3.8 리바운드, 2.4 스틸을 기록하는데 신장 160cm밖에 되지 않는 선수가 대학에서의 기록이긴 하지만 15 득점 가까이 기록하고 리바운드를 4개가량 잡아냈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이 수치는 그가 얼마나 공격적인 자세로 공. 수에서 노력해 왔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그스는 1986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하여 팀을 우승시키기도 한다. 

 

마스코트로 취급받다

타이론 보그스는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12번으로 워싱턴 불리츠에 지명되는데 당시 팀에는 마누트 볼이라는 231cm의 장신 선수가 있어서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그스는 팀에서 20분 정도를 뛰며 나름의 활약을 하지만 감독은 그의 키에 대한 편견으로 그를 주로 벤치에 앉혀두었다. 그러자 주위의 시선도 NBA 선수라기보다는 이슈를 만드는 마스코트처럼 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1988 시즌 샬럿 호네츠가 창단되자 확대 드래프트를 통해 호네츠로 팀을 옮기게 되며 그의 입지가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호네츠 입단 초기에는 워싱턴 때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편견으로 인해 신임을 받지 못해 줄곧 벤치에를 지키곤 했고, 1990년에는 감독이 그를 트레이드해버리려고도 했으나 오히려 감독이 사임하게 되고, 덴버 너기츠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알란 브리스토우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브리스토우 감독은 덴버 시절부터 그의 패싱 센스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샬럿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가 구상하는 패싱게임에 보그스가 딱 맞는 선수라고 믿고 그를 중용하게 된다. 이후 점점 출전시간을 늘려간 보그스는 10개 가까운 어시스트를 매년 기록하며 샬럿의 알론조 모닝, 래리 존슨, 델 커리와 함께 팀을 발전시켰고 92-93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5할 승률을 넘기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호네츠를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와 맞설만한 강팀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단순히 마스코트 취급을 받던 선수가 당당하게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진짜 NBA를 대표하는 마스코트이자 불리한 신체조건을 이겨낸 상징적인 인물로 거듭난 것이다.

 

그의 능력

그는 당시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을 높은 BQ와 빠른 발, 엄청난 점프력과 악착같은 근성으로 커버했다. 타이론 보그스는 작은 신장 탓에 수비에서 굉장히 불리했지만 엄청난 활동량으로 이를 극복한다. 우선 그는 사이드 스텝이 엄청나게 빠른 선수여서 쉽게 돌파하기는 힘들었고 굉장히 단단한 체구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보니 포스트업으로 쉽게 밀리지도 않았다.

타이론 보그스는 상대 공격수에게 거리를 준 순간 사실상 세로 수비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최대한 달라붙어 어려운 슛을 쏘게 만드는 플레이를 했다. 빠른 발과 손을 이용해 끊임없이 스틸을 노렸고 공격수에게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핸드체킹을 하며 그들을 괴롭히곤 했다.

공격에서는 수비수의 블록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절대 무리한 플레이를 하지 않았고, 뛰어난 볼 핸들링으로 수비를 완벽하게 떼 놓은 상태에서 기습적인 슛을 시도하거나 레이업을 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의 전성기 시절인 89~97년까지 그의 슛 성공률은 47% 정도가 되는데 그의 키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었다.

신체적인 한계로 많은 부상을 격기도 했지만 그는 한때 존 스탁턴에 이어 리그 2위의 어시스트 기록을 세우기도 한 뛰어난 정확한 패스를 가지고 있었고 속공 위주의 공격을 하던 샬럿에서도 실책이 적은 안정적인 플레이로 커리어 통산 2개 이상의 실책을 한 시즌이 한 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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