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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킴 올라주원 : Hakeem the Dream

by 이니웍스 202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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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에서 NBA에 입성한 골키퍼

하킴 올라주원은 1984년부터 2002년까지 NBA엣 활약한 농구선수이다. 정규리그 MVP와 파이널 MVP 올해의 수비수를 수상한 1990년대 최고의 센터로 1990년대 NBA 4대 센터 중 1번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이다. 4대 센터라 불리는 샤킬 오닐,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보다 먼저 우승반지를 차지했고 그들과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했다는 점에서 그가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었는지 알 수 있다.

팬들은 그의 대단한 활약을 보며 The Dream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지만 상대팀에게는 Dream이 아니라 Nightmare였다. 그리고 올라주원 특유의 날렵한 몸놀림을 비유해 나이지리아 흑표범이란 별명도 붙여주었다.

 

올라주원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출신으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올라주원이라는 이름은 현지어로 "늘 정상에 서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15세까지 골키퍼를 했다고 한다. 15세까지 농구공은 잡아보지 못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다 우연히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인 가이 루이스라는 사람이 큰 키에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프리카의 선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이 이야기는 후에 에어라는 영화의 소제로 쓰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며 농구부에서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휴스턴 대학교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기초가 없는 선수였기에 성장이 더딘 것이 문제였는데 학교에서 당시 휴스턴 로키츠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모제스 말론을 그에게 붙여주어 그에게 여러가지 부분을 가르치게 했다.

그 결과 올라주원은 2학년때부터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고 82-83 시즌31승 3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NCAA 파이널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게 패배하게 되고 다음 해에는 NBA로 떠난 드렉슬러 없이 다시 한번 파이널에 올랐지만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조지타운 대학교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하게 된다.

 

랄프 샘슨과 하킴 올라주원의 트윈타워

1984년 하킴 올라주원은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고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휴스턴 로키츠에 지명된다. 당시는 센터를 중심으로 한 플레이를 펼치던 시대였고 올라주원의 당시 주가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마이클 조던을 능가하는 수준이었기에 1번으로 NBA에 입성하게 된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때 휴스턴에는 랄프 샘슨이라는 2미터 24센티미터의 센터가 있었는데 둘 다 센터로써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었고 기동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휴스턴이 둘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올라주원은 데뷔시즌에 평균 20.6점 11.9 리바운드 2.7 블록슛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 올라주원과 랄프 샘슨은 콤비 플레이는 절정에 올랐고 시즌 성적도 51승 31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서부 최강이었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물리치며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래리 버드가 이끌던 보스턴 셀틱스 이 당시 보스턴은 너무나도 강한 상대였고 결국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84-86 시즌 랄프 샘슨이 구단과 사이가 멀어지며 트레이드 되었고 트윈타워는 해체되고 만다. 하지만 올라주원의 성적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고 쿼드러플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그의 성장이 팀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기가 길어져가고 있었다.

 

두 번의 우승반지

92년에 감독 대행을 맞았던 루디 톰자노비치는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자 올라주원의 활용도를 극대화시킬 방법을 구상했다. 이 방법은 올라주원의 넓은 시야와 패싱 능력을 활용해 외곽 슛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전술로 92-93 시즌 올라주원은 평균 3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상대 수비가 외곽의 슈터들도 함께 견제해야했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수비는 느슨해졌고 올라주원은 이를 활용해 더 쉽게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어시스트와 평균 득점이 함께 상승했던 것이다.

93-94 시즌은 노력의 결과로 정규시즌MVP를 차지하게 되고 포틀랜드, 피닉스, 유타를 꺾으며 파이널로 향한다.

상대는 대학시절 우승을 두고 맞붙어 패했던 패트릭 유잉의 뉴욕닉스였고 뉴욕은 당시 리그에서 최고로 터프한 선수들을 보유한 수비력이 뛰어난 팀이었다. 하지만 올라주원은 그들의 터프한 디펜스에도 매 경기 20점 이상씩을 올려줬고 6차전에서는 27점을 기록하였으며 존 스탁스의 마지막 슛을 막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7차전에서도 25점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는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문제는 다음 시즌이었는데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해 휴스턴 로키츠의 경쟁력은 약해지자 휴스턴은 트레이드로 대학시절 올라주원과 콤비였던 드렉슬러를 데려오는 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은 쉽지 않았고 휴스턴은 서부리그 전체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1라운드는 유타, 2라운드는 피닉스, 4라운드는 샌안토니오였다. 스탁턴과 말론, 찰스바클리와 케빈 존슨 데이비드 로빈슨까지 엄청난 상대들을 하나하나 꺾으며 진출한 파이널 상대는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가 버티는 싱흥 강호 올랜도였다. 올랜도는 야구에서 복귀한 조던의 시카고를 꺾으며 상승세를 이어가던 팀이라 다수의 전문가들도 올랜도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하킴 올라주원과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샤킬 오닐과 하더웨이를 상대로 더 노련한 모습을 보이며 4승 무패로 올랜도를 싱겁게 꺽어버리며 두 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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